"달콤한 유혹이 꽃을 피운다?" 블루베리 재배 농가라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봤을지도 모른다. 가지를 잘라내고, 설탕물을 뿌렸더니 꽃눈이 생겨났다? 조금은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중국 베이징 임업대학교 연구진이 그 과정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고산 블루베리(Vaccinium corymbosum)의 꽃눈 분화가 단순한 가지치기와 설탕 공급만으로도 유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는 꽃이 피는 ‘신호’가 바로 식물 내부의 당, 특히 ‘설탕(자당, sucrose)’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지를 자르면 꽃이 핀다? 그 속엔 ‘설탕’이 있다
블루베리는 가지치기를 통해 수확량과 품질을 높이는 대표적인 과수다. 그중에서도 가을에 위쪽으로 곧게 뻗은 새 가지를 짧게 잘라주는 '쇼트 프루닝(short pruning)'은 꽃눈 형성을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가지치기만 했을 때, 가지치기 후 잎을 절반만 남겼을 때, 여기에 설탕을 추가로 뿌렸을 때를 비교했다. 흥미로운 결과는 세 그룹의 꽃눈 형성 속도와 비율이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가지치기만 했을 경우에는 꽃눈이 빠르게 분화했지만, 잎을 절반 자른 그룹에서는 형성 속도가 늦어지고 꽃눈 수도 줄었다. 그런데 이 잎을 자른 그룹에 설탕을 1.5% 농도로 분무하자, 꽃눈 형성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결국, 잎은 단순한 광합성 장기를 넘어 꽃눈을 만들기 위한 ‘당공장’이자 ‘신호 송출기’였던 셈이다.
당이 움직이면 꽃눈도 반응한다
이 연구의 핵심은 자당이 식물 내부에서 어떻게 움직이며 어떤 유전자를 활성화시키는지를 추적한 데 있다. 연구진은 식물의 줄기, 잎, 잎맥, 꽃눈에서 자당, 포도당, 과당, 전분 등의 농도를 시기별로 측정하고, 관련 유전자들의 발현도 함께 분석했다.
꽃눈이 형성되는 초기에는 줄기 속 당이 줄고, 잎과 꽃눈에는 자당이 확 늘어났다. 이어 포도당과 과당이 증가하며 꽃눈 내부에서는 전분 입자가 다량으로 축적됐다. 마치 식물이 ‘꽃을 피울 준비’를 위해 당을 전략적으로 분배하는 듯한 모습이다. 특히 VcFT
, VcSOC1
, VcTPS1
같은 유전자가 잎과 꽃눈에서 동시에 활성화되며 꽃눈 분화를 유도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전자 간 상호작용이었다. 자당 합성에 관여하는 VcTPS1
유전자가 꽃 형성 유전자인 VcSOC1
을 자극하고, 이 두 단백질이 함께 작용해 꽃눈 형성을 끌어낸다는 것이다. 결국 자당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꽃을 피우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꽃을 피우는 전략, 이제는 ‘설탕’까지 계산하자
이번 연구는 단순히 블루베리 재배 기술의 개선을 넘어, 식물 생장에 있어 당의 역할을 새롭게 조명한 성과다. 지금까지는 꽃이 피기 위해서는 광량, 온도, 호르몬 등이 주요한 요인으로 여겨졌지만, 자당이라는 탄수화물 하나가 이 모든 조건에 버금가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앞으로는 블루베리를 포함한 다른 과수 재배에서도 '얼마나, 어떻게 자를 것인가'에 더해, '설탕을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리 요소로 떠오를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는 다른 목본식물의 개화 조절에도 적용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꽃 피는 시기나 양을 조절하는 기술도 기대해볼 수 있다.
이제 농부는 단순히 가지를 자르는 기술자가 아니라, 식물의 당 흐름을 설계하는 ‘꽃 디자이너’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꽃이 피는 달콤한 순간은, 과학이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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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Wu, X.; Li, Y.; Zhang, S.; Qie, M.; Feng, X.; et al. Sucrose participates in the flower bud differentiation regulation promoted by short pruning in blueberry. Fruit Research 2025, 5: e025. https://doi.org/10.48130/frures-0025-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