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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허브

독성 중금속에 맞선 쌀의 반격: 포도 유전자 활용한 '저카드뮴 쌀'의 탄생

by 숏다리영감 2025.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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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논밭이 '보이지 않는 독'에 시름하고 있다. 바로 카드뮴(Cd)이다. 이 중금속은 산업 폐수나 비료 등을 통해 농토에 스며들어 벼의 뿌리를 타고 줄기, 나아가 쌀알 속에까지 쌓인다. 카드뮴에 오염된 쌀을 장기간 섭취하면 신장과 간 등 인체 여러 기관에 손상을 일으키며,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를 1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카드뮴에 강하고, 쌀알에 축적되지 않도록 만든 새로운 쌀 품종이 중국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그것도 다름 아닌 '포도'에서 유래한 유전자를 이용해서 말이다.


 '포도 유전자'가 쌀을 살렸다?


이번 연구를 이끈 상하이 농업과학원의 연구진은 카드뮴에 강한 식물로 알려진 포도(Vitis vinifera)에서 세 가지 유전자를 선택했다. 카드뮴을 세포 밖으로 밀어내는 수송체 유전자(Vvmrp1)와 카드뮴 이온을 붙잡아 무독성 상태로 만드는 단백질을 만드는 금속결합단백질 유전자(Vvmt1, Vvmt2)가 그것이다. 이 세 유전자를 동시에 쌀에 삽입해 새로운 트랜스제닉(transgenic) 쌀을 만든 결과,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연구팀이 만든 쌀은 실험실 조건에서 30mM의 고농도 카드뮴에서도 살아남았다. 이는 일반 쌀이 모두 죽는 농도다. 또 실외 토양에 카드뮴을 첨가한 실험에서도 이 트랜스제닉 쌀은 일반 쌀보다 생존율이 월등히 높았다. 뿌리와 줄기는 물론, 쌀알 속에 축적된 카드뮴 농도도 각각 35.8%, 83%, 76.8%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카드뮴 배출과 무독화,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핵심은 '역할 분담'이다. Vvmrp1 유전자는 세포 내에 들어온 카드뮴을 다시 세포 밖이나 식물의 저장소인 액포(vacuole)로 내보낸다. 일종의 카드뮴 펌프다. 반면 Vvmt1과 Vvmt2는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카드뮴 이온을 붙잡아 안정된 복합체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활성산소 생성도 줄여 식물의 세포를 보호한다.

이 두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하면서 카드뮴의 세포 내 농도는 크게 낮아졌고, 다른 기관으로의 이동도 차단되었다. 게다가 트랜스제닉 쌀은 카드뮴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철(Fe), 인(P), 마그네슘(Mg) 등 필수 미네랄의 흡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즉, 카드뮴은 줄이고, 영양은 챙긴 셈이다.


 수확량에도 영향 없어... 기존 기술의 단점 보완


사실 그동안에도 카드뮴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유전자 조작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쌀이 본래 갖고 있는 유전자를 변형하거나 없애는 방식이어서 생장 저하, 수확량 감소 같은 부작용이 따랐다. 예를 들어, 카드뮴 흡수를 막기 위해 금속 수송체 유전자를 없애면, 동시에 철이나 망간 같은 필수 금속의 흡수도 방해돼 식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이번에 개발된 쌀은 포도에서 가져온 외래 유전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기존 유전자의 기능을 건드리지 않는다. 연구 결과, 이 트랜스제닉 쌀은 카드뮴이 없는 일반 환경에서도 생장 속도, 키, 수확량, 이삭 수 등 모든 측면에서 일반 쌀과 차이가 없었다. 그야말로 '본전도 지키고, 카드뮴도 막는' 이상적인 결과다.


 실용화는 언제쯤?


이번 연구는 실험실 수준의 유전자 조작과 생리학적 실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상용화를 위해서는 안전성 평가와 규제 검토, 대규모 실증 시험이 필요하다. 또한 유전자변형(GMO)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도 넘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뮴 오염이 심각한 일부 지역에서는 이 기술이 식량 안전을 위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농업이 환경오염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식물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포도의 유전자를 빌려온 이 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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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논문
Han, H.; Wang, Y.; Qian, C.; Yao, Q.; Liu, Q. Vvmrp1, Vvmt1, and Vvmt2 Co-Expression Improves Cadmium Tolerance and Reduces Cadmium Accumulation in Rice. *Agronomy* 2025, *15*, 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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