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물에서 약효 성분을 뽑아내는 기술이 한층 진화하고 있다. 식물이나 버섯, 해조류 같은 생물자원에서 유용한 물질을 추출하려면 단단한 세포벽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넘어야 한다. 이때 ‘효소’를 이용한 추출법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의 뜨거운 물이나 화학 용매를 쓰는 방식보다 환경 친화적이며, 추출 효율도 뛰어나다는 것이 핵심이다.
폴리페놀, 당, 단백질, 카로티노이드까지 다양한 물질을 효과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는 연구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효소 기반 추출법은 과연 기존 기술을 대체할 수 있을까?
원문: 천연 생리활성물질 추출을 위한 효소보조 추출법의 적용 (Application of Enzyme-Assisted Extraction for the Recovery of Natural Bioactive Compounds for Nutraceutical and Pharmaceutical Applications) (CC BY 4.0)
저자: Agnieszka Łubek-Nguyen, Wojciech Ziemichód, Marta Olech (루블린 의과대학)
출판일: 2022년 3월 22일
저널: Applied Sciences
자연에서 얻는 약리성분은 인류의 오랜 자원이었다. 전통 의약이나 천연 화장품은 물론, 현대 의약품 중 상당수도 식물 등 자연 유래 물질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를 산업적으로 활용하려면, 추출 효율이 핵심 과제가 된다. 특히 환경과 경제성까지 고려하면, 고온·고압·유기용매 중심의 기존 추출법은 여러 한계를 안고 있다.
이에 주목받는 것이 바로 효소보조 추출법(Enzyme-Assisted Extraction, EAE)이다. 이 방식은 천연물의 세포벽이나 세포 내 구조를 분해하는 효소를 이용해, 유효 성분이 잘 빠져나오게 돕는 기술이다.
🔬 효소, 세포벽을 뚫다
식물의 세포벽은 셀룰로오스, 헤미셀룰로오스, 펙틴, 리그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구조는 생물체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지만, 동시에 유효 성분의 추출을 방해하는 물리적 장벽이기도 하다. 효소를 활용하면 이러한 장벽을 분해하여 물질이 쉽게 확산되고 용매에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든다.
주로 사용되는 효소는 다음과 같다:
셀룰라아제(Cellulase): 셀룰로오스를 포도당으로 분해
펙티나아제(Pectinase): 펙틴 분해, 주로 과일에 풍부
헤미셀룰라아제(Hemicellulase): 헤미셀룰로오스를 분해
프로테아제(Protease): 단백질 분해, 특히 동물 조직에 효과
이러한 효소는 대부분 곰팡이(Aspergillus niger, Trichoderma reesei 등)나 세균에서 유래하며, 상업적으로 대량 생산되어 다양한 조합으로 사용된다. 특히 복합효소 혼합물(Viscozyme, Kemzyme 등)은 서로 다른 세포벽 성분을 동시에 공략해 추출 효율을 극대화한다.
📈 효소 추출, 실제 효과는?
논문은 다양한 천연물(식물, 균류, 해양 생물 등)을 대상으로 효소 추출법을 적용한 결과를 정리했다. 예를 들어,
카로트(Carrot): 펙티나아제를 활용해 카로티노이드 추출율 90% 향상
라즈베리씨앗: 프로테아제 처리로 폴리페놀 수율 3.7g/100g까지 증가
토마토 껍질: 셀룰라아제+펙티나아제 혼합 처리로 라이코펜 추출 향상
감귤 껍질: 비스코자임(Viscozyme) 처리로 정유 수율 46.3 mL/kg 확보
또한, 단순 추출 효율 증가뿐 아니라 항산화 활성, 생리활성 보존, 지질/지용성 비타민 함량 증가 등의 긍정적 효과도 확인되었다.
🧪 최적화가 핵심이다
EAE는 조건 최적화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효소의 종류, 농도, 반응 시간, pH, 온도 등 매개변수를 미세 조정해야 한다. 일부 사례에서는 초음파, 마이크로파, 유기용매와의 조합으로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무조건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효소 반응이 원활히 일어나지 않거나, 다른 추출법에 비해 효율이 낮았던 사례도 보고되었다. 이는 기질 특이성, pH 불일치, 자가분해효소의 존재 등 다양한 변수 때문이었다. 결국, 대상 소재와 추출 목적에 따라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
🌿 앞으로의 가능성은?
효소보조 추출은 ‘녹색화학’이라는 흐름 속에서 점점 더 각광받고 있다. 유기용매 사용을 줄이고, 저온에서 작용하기 때문에 환경 부담이 적다. 또한 농산물 부산물 등 폐기자원에서도 고부가가치 물질을 얻을 수 있는 ‘업사이클링’ 기술로도 주목받는다.
하지만 상용화를 위해선 효소 비용, 안정성, 처리량 등의 문제를 극복해야 하며, 산업별로 최적화된 프로토콜 개발이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소는 ‘자연을 열쇠로 열 수 있는 열쇠’로서 앞으로의 천연물 산업을 이끌 기술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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