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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허브

고대 아라비아에서 향초로 쓰인 식물의 정체가 밝혀지다: 철기시대의 푸마갈라(Peganum harmala) 사용에 관한 첫 과학적 증거

by 숏다리영감 2025.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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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식물을 단순한 식재료가 아닌, 약, 의식 도구, 향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해왔다. 그중에서도 약용 및 향정신성 식물은 건강과 의례, 감각의 확장 등 문화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번에 소개할 연구는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쿠라야(Qurayyah) 오아시스 유적에서 발굴된 향로의 잔류물을 분석함으로써, 푸마갈라(Peganum harmala)라는 식물이 약 2,700년 전 고대 아라비아에서 실제로 사용되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이는 이 식물의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훈증(fumigation) 사용 증거로, 향후 식물기반 전통의학 및 고대 문화 연구에 큰 전환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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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마갈라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중요한가?


푸마갈라는 아랍 지역에서 흔히 "하르말(Harmal)"로 불리며, 강한 향과 다양한 약리 작용으로 유명하다. 항균, 항염, 항기생충 효과뿐 아니라 항우울, 진정, 심지어 환각 유도성분까지 포함되어 있어 전통 의학과 민간 요법에서 널리 활용되어 왔다.

이 식물에는 하르민(harmine), 하르만(harmane)이라는 β-카르볼린계 알칼로이드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분해를 억제하여 기분 안정 및 통증 완화 효과를 낸다. 중요한 점은 이 성분들이 흡입이나 연소를 통해서도 흡수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연기로 태워도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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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배경: 고대 아라비아 식물문화는 왜 중요할까?


중국, 메소포타미아, 이집트와는 달리 고대 아라비아에는 식물 및 의학에 대한 고문서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렇기에 식물 이용 흔적은 대부분 구전되거나 사라졌다. 이 연구는 물질 문화의 잔류물 분석을 통해 사라진 식물 활용 지식을 복원한 희귀한 사례다.

과거에도 유럽이나 중앙아시아에서 향정신성 식물의 고고학적 잔류물 분석이 시도된 바 있지만,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이번이 최초다. 푸마갈라의 존재가 확인됨으로써, 아라비아 고대사회도 자생 식물의 약리 특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실생활에 적극 활용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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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구 방법과 주요 발견


연구팀은 쿠라야 유적지에서 출토된 철기시대 가옥 내부의 향로(총 4개)에서 유기물 잔류물을 채취했다.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와 질량분석법(HPLC–MS/MS)을 통해, 세 개의 샘플에서 푸마갈라 특유의 하르민과 하르만을 검출했다. 이는 해당 향로에서 실제로 푸마갈라가 태워졌음을 의미한다.

또한, 함께 발견된 스테롤 성분은 푸마갈라 씨앗의 기름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크며, 일부 샘플에서는 트리테르펜(α-amyrin, β-amyrin)도 검출되었는데 이는 부수적으로 다른 식물성 수지나 오일이 함께 쓰였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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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인들은 왜 푸마갈라를 태웠을까?


논문은 여러 가능성을 제시한다. 가장 유력한 해석은 의료적/위생적 fumigation, 즉 항균, 살충, 통증 완화, 공기 정화 등을 목적으로 태운 것으로 본다. 현재도 사우디 일부 지역에서는 푸마갈라 연기를 이용해 방충, 두통 치료, 혹은 악귀 퇴치 의례를 수행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훈증 행위가 주거 공간 내부에서만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공공 의례나 장례 목적보다는 가정 내 치료나 위생 관리 목적이었을 가능성을 높인다. 이처럼 향정신성 효과가 있음에도, 주된 목적은 실용적이었음을 암시한다.

 

A. 원형으로 표시된 발굴 지역 D, N, R의 위치가 표시된 쿠라이야(Qurayyah)의 드론 사진 (사진: A. M. Abualhassan). B. 제1철기 시대 D 지역 주거지에서 발견된 향로 QU.D.1167.F.6 및 채색 토기 QU.D.1167.F.1 제자리 발굴 모습 (사진: S. McGlone), 그리고 제1철기 시대 N 지역의 상류층 주거지 (사진: A. M. Abualhassan). C. D 지역에서 발견된 향로 QU.D.1167.F.6 및 N 지역에서 발견된 두 개의 향로 QU.N.2340.F.3 및 QU.N.1253.F.1의 사진 (사진: H. Sell [D 지역] 및 C. Jäger [N 지역]). 그래픽: Michelle O’Reilly, MPI-G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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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마갈라의 활용, 현대에 시사하는 바


이 연구는 고대 아라비아 식물문화에 대한 첫 물질적 증거라는 점에서 학술적으로 매우 의미 있지만, 동시에 다음과 같은 현대적 함의도 있다:

1. 전통 식물 지식의 재발견: 고대의 약용식물 활용법을 재구성함으로써, 오늘날 사라져가는 민간요법과 자연치유법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2. 신약 개발의 단서 제공: β-카르볼린 계열 화합물은 이미 항우울, 신경안정제로 연구되고 있는데, 고고학적 발견이 이를 새로운 조합 또는 방식(예: 연기 흡입)으로 확장할 수 있다.
3. 문화유산 보존의 필요성 제기: 아라비아 지역에서 아직 일부 살아있는 민속의학 지식을 보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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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무리하며


이번 연구는 단순히 "고대에 어떤 식물을 사용했는가"를 밝히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잃어버린 전통 지식과 문화적 연속성을 복원하는 창구로서 고고학적 유기물 분석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푸마갈라라는 하나의 식물이 고대의 지혜와 현대 과학을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식물문화 연구자뿐 아니라 의학, 인류학, 민속학, 심지어 환경디자인 분야에까지도 깊은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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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Lian J, Zhang Y, Dong K, Shi J, Zhang F, Shan G, Liu P, Wang N and Jia T (2025) Enhanced oral bioavailability of two Cistanche polysaccharides in acteoside: an in-depth analysis of intestinal flora, short-chain fatty acids, and pharmacokinetic regulation. *Front. Nutr.* 12:1509734. doi: 10.3389/fnut.2025.1509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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